📚 독서

[철학] 권위에의 복종 /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 - 스탠리 밀그램

애-용 2023. 9. 17. 23:45
728x90

 

권위에의 복종 /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 - 스탠리 밀그램

밀그램 교수가 진행한 “아이히만 실험”에서 시사하는 바는 “권위에의 복종”이다.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 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사람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자제심과 양심의 작용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이히만 실험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보자.

 

실험 설계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실험에 참여할, 나이 20대 에서 50대 사이의 남성 40명을 신문 광고를 통해 모집하였고, 피실험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교사 역할과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를 각각 1명씩 그룹을 지어 실험을 실시했다.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는 양쪽에 전극이 부착된 의자에 묶인 채 실험관에 의해 전기 충격 장치가 연결되었고,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는 전기 충격 발전기가 있는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전기 충격 발전기에는 15V 부터 시작해 450V 까지 15V씩 증가하도록 총 30개의 스위치가 달려있었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냈을때 학생이 틀리면 교사가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실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는 배우였으며, 전기 충격 장치도 가짜였다.

 

결과

기계에는 300V 이상의 충격을 주면 위험하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고, 300V에 도달한 순간부터 학생 역할의 배우는 전기 충격을 받으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으며, 가슴이 아프다며 그만둘 것을 간청하고 전압이 너무 높아지면 죽은 듯이 전기 충격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연기까지 했다.

충격적이게도 선생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 중 65%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실제로 선생 역의 피험자 중 많은 사람이 실험 도중에 주저하거나 갈등올 보였지만, 실험 담당자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대학 측에서 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하는 표정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이는 책임 전가를 어렵게 하면 복종률이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담당자를 두 사람으로 하고 도중에 각자 다른 지시를 내리도록 한다.

150V에 달한 시점에서 실험 담당자 중 한 사람은 “학생이 괴로워하고 있어. 더이상은 위험해, 중지하자”라고 말을 꺼내는 한편, 다른 한 사람은 “괜찮으니까 계속하자”라며 피험자를 재촉한다.

이러한 상황(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에서는 더 높은 전압을 가하며 밀어붙인 피험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실험을 계속할지 말지의 의사 결정은 진짜 피험자인 선생 역에게 큰 압력으로 다가와 다른 사람에 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례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다. 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덕이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분업”에 주목한다.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는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홀로코스트 실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가 술회했다.

 

아이히만 실험은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 의견 또는 양심과 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이 아닌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도, 그리고 나치 이외의 다른 조직에도 그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일에 흥미가 없어도 책임감이 뒤따르면 또 다른 면에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책임 전가”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책임을 전가 한 경험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 있을 때 리더에게 한번 조언을 구하여 해결책을 얻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리더가 제시해준 해결책으로 인해 잘못된 경우 리더에게 전가해야겠다는 (나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리더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책임전가이다. 리더의 도움을 받았으니, 나의 양심의 가책을 리더와 나누려고 했던 것이다. 도움을 받던 말던, 내가 수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읽으면서, 누구의 책임인지 명확하게 판가름해낼 수 없는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라는 걸 느꼈다. 이건 어떠한 상황에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단체로 분담으로 하여 불법행위를 한다고 해보자. 분담을 하니 “불법”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부 행동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불법 조달을 예시로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불법 단체이든, 정치든, 학교 내 학생 무리가 될수도 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언제든지 책임 전가가 일어날 수 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거나, 바로잡아야한다고 느낀다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해보자.

위의 실험에서 나타났다시피, 의사결정을 직접 물어보자. 질문 하나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728x90